
한국 법정물 드라마는 단순히 재판 장면이나 법조인의 논리 싸움을 다루는 장르에서 벗어나, 인간의 도덕적 갈등과 사회 구조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탐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비밀의 숲’, ‘로스쿨’은 모두 법과 정의를 중심으로 하지만, 각각의 시선은 전혀 다르다. 하나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법정, 다른 하나는 냉철하고 제도적인 현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젊은 세대의 이상과 책임을 다룬다. 이 글에서는 세 작품의 핵심 주제, 인물의 상징성, 법의 의미를 중심으로 비교하며 한국 법정물 드라마가 보여주는 진정한 정의의 형태를 살펴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신입 변호사 우영우(박은빈)의 성장과 도전을 그린 드라마다. 기존의 법정물이 차가운 논리와 긴장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면, 이 작품은 ‘공감’이라는 감정의 무게를 법정 안으로 끌어들였다. 우영우는 천재적인 기억력으로 사건의 핵심을 꿰뚫지만, 세상은 그녀를 능력보다는 ‘다름’으로 본다. 그녀의 여정은 곧 사회가 약자에게 보내는 시선의 거울이다. 법이란 ‘옳고 그름을 가르는 도구’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켜주는 울타리’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각 사건은 단순한 승소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편견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다. 예컨대 고래 사건, 장애인 인권 사건 등은 현실에서도 발생 가능한 사회 문제를 법의 언어로 풀어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법정물의 감정적 깊이를 확장시킨 작품이다. 법이 더 이상 권력자의 무기가 아닌, 다름을 인정하는 사회의 언어로 자리 잡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비밀의 숲
‘비밀의 숲’(2017)은 감정이 결여된 검사 황시목(조승우)과 형사 한여진(배두나)이 검찰 내부의 부패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법정물의 긴장감을 사회 시스템 내부로 확장시키며, ‘정의’가 개인의 감정보다 시스템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보여준다. 황시목은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그를 ‘진정한 정의의 관찰자’로 만든다. 그는 개인의 이해관계를 배제한 채, 오직 사실과 논리만으로 사건을 파헤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것은 냉혹한 현실이다 — 법은 권력의 손에 의해 언제든 왜곡될 수 있다는 것. 이 드라마의 강점은 감정 대신 구조를 다루는 데 있다. 검찰 내부의 정치, 언론과의 관계, 권력 유착 등 현실 사회의 부패 구조가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시청자는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추상적 질문보다, ‘정의가 왜 무너지는가’라는 근본적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비밀의 숲’은 법정물의 한계를 넘어 사회 제도 비판 드라마로 평가받는다. 냉정한 시선 속에서도 정의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그리며, 법이 인간을 지배할 때 생겨나는 윤리적 공백을 날카롭게 짚어낸다.
로스쿨
‘로스쿨’(2021)은 법학전문대학원 학생들과 교수들이 살인사건을 통해 진정한 정의의 의미를 깨닫는 이야기다. 기존의 법정물이 이미 완성된 법조인들의 세상을 다뤘다면, 이 작품은 ‘정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법대생들은 교과서 속 판례를 암기하지만, 실제 사건에 맞닥뜨리면서 법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과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교수 양종훈(김명민)은 “법은 사람의 양심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명대사를 통해 법의 철학적 깊이를 드러낸다. 이 드라마의 핵심은 젊은 세대의 정의감이다. 이들은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고, 불합리한 현실에 도전한다. ‘로스쿨’은 단순한 법정 스릴러가 아니라, 윤리 교육 드라마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진정한 정의는 판결문이 아닌 사람의 마음속에서 완성된다는 메시지는 오늘날 청년 세대에게 큰 울림을 준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비밀의 숲’, ‘로스쿨’은 각각 다른 결을 지닌 법정물이지만, 모두 정의를 향한 인간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우영우는 약자의 시선으로 본 따뜻한 정의, 비밀의 숲은 권력 속에서 찾는 냉철한 정의, 로스쿨은 미래 세대가 만들어가는 책임 있는 정의를 보여준다. 세 작품은 공통적으로 “법은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명제를 강조한다. 즉, 법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법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법정물 드라마는 이제 단순한 범죄 추리나 판결 드라마가 아니라, 사회적 성찰과 인간적 성숙을 그리는 철학적 장르로 진화했다.